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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Mar 12. 2023

5. 놀면서 배워요

놀이터

영국에 살면서 뭐가 제일 좋아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공원이요’라고 답할 거예요. 좁고 낡은 영국식 집, 빡빡한 도시 런던에 살면서도 삶이 팍팍하지 않다 느끼는 건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푸르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중충한 영국의 겨울에도 공원은 나름 운치가 있어요. 여름에는 해를 가려주는 그늘이 되고 비가 올 때는 커다란 우산이 되죠. 날이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공원은 제 일상에 정말 중요한 공간이에요.

아이를 품은 10달 동안 공원은 정말 좋은 산책로였어요. 집과 신랑의 회사, 그리고 공원이 아주 가까웠는데 입덧 핑계로 신랑을 불러내 공원에 앉아 점심을 먹곤 했어요. 태교를 하겠다며 공원에 앉아 뜨개질도 해보고, 책도 읽고, 사람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아침형 아기인 지수는 동이 트기 전, 알람시계도 없이 아침 6시면 눈을 떴어요. ‘엄마 거 신꼬, 째째, 째째, 꼬 꼬’. 해석하자면 엄마 아침이 되었으니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 새를 구경하자는 거예요. 정말 눈을 뜨자마자 매일 밖으로 나가자고 보챘어요. 아침잠이 정말 많은 올빼미형 엄마는 이 시간이 정말 괴로웠어요. 육아를 하고, 또 해도 점심이 오지 않는 그 기분 아세요?

오전 9시. 남들은 회사로 출근할 시간 저는 지수와 공원으로 출근했어요. 없는 거 빼고 모든 걸 다 챙겨 유모차에 싣고요. 유모차를 밀고 오돌토돌한 길을 걷다 보면 지수는 유모차에서 세상구경을 하다 낮잠에 빠지기도 했어요. 인적 드문 벤치에서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며 시간을 보냈죠. 오전 10시. 공원 안 커피숍은 저와 같은 처지의 엄마들로 가득해요. 이미 오전 육아로 지쳐버린 시간. 오후 육아를 위해 커피를 충전하는 엄마들의 시간이죠. 육아 패턴이 비슷한 엄마들과 종종 마주치다 보면 제법 얼굴이 익숙해져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수다를 떨며 정보를 나누기도 해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어른들과의 대화가 고픈 날이 있잖아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응 나 그거 알아. 다 알아’라고 건네는 눈빛. 쭈뼛쭈뼛하던 초보 엄마 시절을 지나 이제는 여유롭게 어느 누구와도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엄마로 성장했어요.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부터 공원은 가장 좋은 놀이터였어요. 애착 인형 코코를 옆구리에 딱 끼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요.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보이는 웅덩이마다 첨벙첨벙 거리죠. 공원에서 만난 거위, 백조, 오리, 다람쥐는 중요한 육아 파트너예요. 집에서 먹다 남은 식빵 몇 조각을 챙겨나가면 공원의 핵인싸가 되죠. 온갖 새들에게 둘러싸여요. 엄마는 정말 새를 싫어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어쩌겠어요.

가을이 되면 우중충한 회색빛의 날이 계속돼요. 비가 오면 낙엽이 떨어지고 달팽이와 지렁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죠. 행여나 달팽이가 사람들에게 밟힐까 봐 나뭇가지를 들고 하나하나 나무로 옮겨줘요. 어느 날은 달팽이를 일주일만 키워보기로 했어요.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집도 만들어 주고 먹이도 챙겼죠. 달팽이가 그렇게 많이 먹었던가요. 공원에 널려있는 나뭇가지, 낙엽, 꽃과 돌멩이는 재밌는 장난감이 돼요. 아름드리나무에 매미처럼 들러붙어 나무 벌레도 부르고, 개미집도 찾아요. 서로 다른 모양의 낙엽, 돌멩이도 모아보고, 솔방울도 따고, 꽃반지도 만들어요.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 가방은 항상 이렇게 늘어난 살림이 가득해요. 잘 씻어서 색칠도 해보고 집안을 장식하기도 해요. 아이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몰래 잘 버리는 기술도 필요해요.


낙엽이 모두 져버린 늦가을의 어느 날은 동네 칠드런 센터에서 계획한 공원 소풍에 따라갔어요. 겨울을 나야 하는 새와 다람쥐를 위해 비상식량을 만들었죠. 돼지기름에 여러 종류의 견과류를 섞어 종이컵에 가득 담아 나무에 매달아 놓았어요. 생전 처음 만져본 돼지기름, 기름 범벅이 된 손을 물티슈로 대충 닦고는 낙엽 더미에 둘러앉아 핫 초콜릿을 나누어 마셨어요. 달달한 핫 초콜릿 때문인지 너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이 상황이 너무 웃기면서도 좋았어요. 세상 모든 걸 만지고 관찰하고 배웠던 그 시절의 나.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나의 놀이들이 떠올랐죠.


지수는 3살까지 그네와 미끄럼틀을 무서워했어요. 기다려 주지 못하는 성질 급한 엄마는 아이에게 할 수 있다며 용기도 줬다, 이것도 못 타냐며 놀려도 보고, 왜 이렇게 수줍음이 많냐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만들어내 혼자 했지요. 놀이터에서 만나는 다른 아이들과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겁 많은 아들은 모래 놀이를 좋아했어요. 겨우 혼자 앉을 때부터 모래놀이를 즐겼는데 돗자리 위에 앉아 모래를 맛봤죠. 모래는 근사한 저녁밥이 되고, 토마스 기차의 터널이 되고, 보물섬이 돼요. 처음부터 지수가 모래를 즐길 줄 아는 아이였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제 탓이 크죠. 애가 모래를 잡기만 해도 한 알이라도 입에 들어갈까 손을 털고 닦고 유난이었죠. 그러다 주변을 둘러봤어요. 다른 부모들의 육아를 관찰했죠. 무슨 연유 때문인지 여유롭지 못했어요. 안전을 핑계로 엄마의 불안을 감추려 했죠. 아이를 내 틀 안에 가두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는 모래 위에서 구르고, 눕고, 헤엄치는 아들을 즐겁게 바라봐 줄 수 있게 되었어요. 엉덩이, 발가락, 머리카락 사이사이 알알이 박혀있는 모래를 보며 지수가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군! 하며 뿌듯해져요.

나가기 위해 준비할 것도 많고, 나갔다 오면 정리할 것도 많고,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6시만 되면 졸려서 눈을 비비는 아들을 볼 때면 ‘아, 오늘도 나가 놀기를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우리는 공원으로 놀이터로 나갔어요.


영국의 다양한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놀이터들이 정말 많아요. 동네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의 놀이터를 골라 다니는 재미가 있죠. 자동차, 비행기, 해적. 요맘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들로 꾸며져 있어요. 도장 깨기처럼 각기 다른 놀이터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어요. 놀이터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놀이터는 또 다른 학습의 장이죠. 지수는 이제 무리 지어 놀면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한동안은 놀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시기가 있었어요. 넘어지고 다치고 하던 시기가 지나고. 밀고 당기고 뺏고 뺏기고 울고불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지요. 놀이의 상황에서 갈등은 정말 끊임이 없어요. 항상 뺏기고 울던 아들을 보며 참 많이 속상하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정말 화가 나고 속상해서 누굴 위해 놀이터에 나가나. 누굴 위해 친구랑 놀아야 하나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우리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연습도 했어요. ‘하지 마, 뺏는 건 나쁜 거야!’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요. 엄마인 저도 마음을 숨기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연습을 했죠. 아이는 점점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어요. 맘이 상해 꽁해 있는 엄마와 달리 아들은 쿨하게 상황을 넘겼죠.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말해야 하는지를 놀이터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배웠어요. 사이좋게 나누자 ‘sharing is caring’, 차례를 지키렴 ‘take turns’ 정말 많이 듣고 많이 말하는 문장이에요. 그건 좋은 행동이 아닌 것 같아 ‘I don’t think that’s great’라고 말하며 우아하게 훈육하는 영국 엄마들을 보며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훈육하려고 노력해요. 쉽지 않지만요.


또 얼마간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상황이 보였죠. 언제든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할 일이었던 거지요. 문제 상황에서 그러면 안 된다 타일러도 보고, 혼도 내보고 훈육은 끝이 없습니다. 속상해하던 엄마는 이제 미안해하는 엄마가 되었죠. 상황은 언제나 상대적이잖아요. 요즘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존중’이에요.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놀이에서 조금 떨어져 관찰해요.


비교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놀이터는 엄마인 나에게도 실천적 학습의 장이었어요.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는 이런 상황에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많은 예시 상황들을 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모범답안을 세워가죠. 육아의 길은 참으로 쉽지 않은 수행의 길이네요. 아이의 놀이를 점검해 보고, 성향을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의 어울림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아무리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일부터 놀이 상황을 만들어도. 이제는 아이 스스로 성향이 맞는 친구를 찾아가요. 나도 끌리는 사람,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싫은 사람이 있는데, 이건 그냥 동물적인 감각인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거겠지요. 어느 것 하나도 맘처럼 쉬 것이 없요.


한국의 이야기는... @1of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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