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가졌다는 걸 확인하고 처음 GP에 갔어요. 한국으로 치자면 보건소 같은 곳이에요. 간호사는 소변 테스트를 다시 한번 해주고는 ‘축하해 12주 차에 초음파 하러 가면 돼’라고 말했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헛헛함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12주가 되길 하루하루 기다렸고, 초음파를 받으러 병원에 방문했어요. 이리저리 초음파 사진을 찍었죠. 차를 한잔 마시고, 걷고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했어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죠. 담당 의사는 아기의 목 투명대가 두껍다고 했어요. 피검사를 했어요, 장애의 확률이 있으니 원한다면 양수 채취 검사를 해볼 수 있다고 했죠.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검사를 받지 않았어요.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잠깐 카페에 앉았을 때, 그제야 눈물이 주르륵 흐르면서 덜컥 겁이 났어요. 난 이제 엄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지요.
영국에서는 보통 12주, 20주 두 번의 초음파를 받고 아이를 출산해요. 저는 특별 관리 산모로 분리되었고 매달 워털루 역 근처에 있는 Evelina Children's Hospitality라는 어린이 전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어요. 그리고 초음파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죠. 귀여운 동물과 알록달록 색들로 꾸며진 병원의 복도에서 아픈 아이들, 슬프게 울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마주했어요. 매번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금 무너졌어요.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설렘의 시간이 저에게는 불안함의 기억으로 아직도 슬프게 남아있어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의지할 가족은 신랑 하나뿐인데, 신랑도 새로 입사한 직장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혼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기다려야 했어요. 임신 8개월이 지나고, 마지막 초음파 검사를 했어요. 손가락, 발가락, 얼굴, 심장과 장기들을 확인하고는 드디어 아이는 건강하다는 결과를 들었죠. 하지만,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를 품에 안을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았던 적이 없어요.
영국은 아이가 스스로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최대 2주를 더 기다려요. 지수는 42주를 꽉 채우고 신호를 보냈죠. 2시를 알리는 빅벤의 새벽종을 들으며 병원으로 들어갔어요. 그러고는 꼬박 24시간을 진통했어요. 영국 병원의 분만 과정은 제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편안했어요. 산모인 나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주고 기다려준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진통 과정에는 나를 전담으로 챙겨주는 분만 담당 간호사의 케어를 받아요. 그래프를 보면서 진통과정을 체크하고 혹시나 산모와 아이가 위험하지는 않은지 지켜보죠. 처음 진통을 시작했을 때는 흡입하는 형태의 진통제를 사용했었는데 부작용 때문에 계속해서 구역질을 하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어요. 무통주사를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어요. 샌드위치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기운을 차렸죠. 그제야 옆에서 다독여주던 담당 간호사 루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녀는 옆에 앉아 자기가 아이 셋을 어떻게 분만했는지 이야기해 줬어요. 애 셋을 낳은 흥미진진한 출산 경험을 들으며 쉬운 분만은 없는 거구나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죠. 금방 지나간다는 위로의 말을 믿으며 버텼지만, 자궁문은 1시간에 1센티씩 열렸고 아이는 나올 기미가 안 보였죠. 아쉽게도 루씨는 제가 분만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다른 간호사와 교대했어요. 결국 수술대에 끌려가 누웠어요. 몇 번에 드라마 같은 상황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어요. 루씨는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저를 찾아왔어요. 아기에게는 만나서 반갑단 인사를, 제게는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그 따뜻함, 감사한 마음은 잊지 못해요.
분만 후에는 바로 실전입니다! 아기는 바로 부모의 책임이 돼요. 24시간의 진통과 분만을 마치자마자 갓난아기를 받아 들고 동동 거리며 새벽을 보냈어요. 힘든 시간을 보낸 후였는데도 너무 예쁜 아기를 보느라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어요. 태어난 아기는 아무 이유 없이 8시간을 운데요. 그러니 눈을 좀 붙이라는 간호사의 조언에도 잠을 잘 수 없었어요. 10달을 마음 졸여 기다리던 아기를 만났으니까요. 초보 엄마 아빠였던 우리는 1초마다 아기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어요. 아기가 숨을 안 쉰다며 너무 놀라 비상벨을 눌렀고 산부인과 병동의 온 의사가 한꺼번에 출동했던 해프닝도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의 사투를 끝내고 이날부터는 보이는 모든 것들과의 사투를 시작한 것 같아요. 모르면 용감하지만 또 모르게 때문에 두려운, 걱정으로 마음 졸이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아이를 낳고 처음 부여받은 숙제는 태열이었어요. 추울까 봐 싸매면 더워 보이고, 더 울까 봐 벗기면 재채기를 했죠. 너무나 여린 입 주변의 피부는 수유만 하고 나면 벌게졌어요. 뭐가 문제인 건지 오돌토돌 올라오는 피부, 두피의 딱지, 모든 게 걱정이었죠. 그다음 연구과제는 아이의 변이었어요. 묽어도 돼도, 색이 노래도 파래도 걱정이죠. 아이가 입에 뭘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슬슬 배앓이가 시작되고,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알레르기 박사가 됩니다. 아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종종 아프게 되고, 중간중간 예방접종이라는 고개를 넘죠. 남들 다 한다는 돌치레도 빼놓지 않고 했죠. 몸에 활짝 핀 열꽃을 눈으로 처음 봤어요.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다 싶으면, 감기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코막힘에 좋다는 각종 오일, 양파, 생각, 배, 계피 등 민간요법에 도통 해져요.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폐렴, 중이염, 요로 감염, 후두염 각종 병명을 검사하고 걱정을 만들죠. 그렇게 한해 한해 보내다 보니 그제야 아이의 열에도 아이의 기침에도 조금, 아주 조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였어요.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악명 높아요. 아기가 열이 나서 의사라도 만나려면 일단 보건소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당일예약은 거의 불가능하죠. 하루 이틀 뒤에 예약을 잡으면 그동안 열은 서서히 잦아들어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내심을 기르게 됩니다. 열이 오르더라도 일단 아이를 관찰하며 견뎌보죠. 특별한 감염이 아니라면 하루 이틀 후에 아이는 스스로 컨디션을 찾더라고요. 보건소에 가서 의사를 만나도 마찬가지예요. 의사는 별다른 약 처방 없이 아이가 푹 쉴 수 있게 해 주라고 말하죠. 이러니 의사를 찾아갈 이유가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물론 아이가 아플 때 전문가에게 명쾌한 답을 빠르게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그러다 18개월 즈음, 잡히지 않는 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해열제도 교차 복용으로도 이 원인 모를 열이 잡히지 않았어요. 하루 이틀 지나자 그제야 아기는 귀가 아프다고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아 뭔가 잘못되었다를 느낀 초보 엄마는 아이를 둘러업고 가까운 응급실을 찾았어요. 일단 응급실에 가면 팔이 부러지거나 정말 사안이 시급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열이 나는 아기가 우선이 될 수 없어요. 열이 나 힘들어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가며 2시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아기의 소변을 검사하고 입, 눈, 코, 귀 등을 확인해 염증이 있는 곳을 찾았죠. 중이염이었어요. 으레 그런 열이겠거니 하고 방심했던 엄마는 다시 한번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아이가 단체생활을 시작하면서 감기와 배탈은 일상이 돼요. 겨울이면 콧물을 흘리며 등교하는 아이들이 반 이상이에요. 한 번은 널서리에 열감기가 돌았고, 집에 돌아온 지수는 오늘은 친구가 아파서 집에 갔다고 말해주었죠. 머지않아 지수의 차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처음으로 학교에서 전화를 받아본 거라 마음이 철렁했어요.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축 늘어진 아이가 교실 한구석에 누워 자고 있더라고요. 놀라서 당황한 엄마와 달리 담임선생님은 차분하게 열감기가 돌고 있다며 설명해 주셨고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보셨겠어요. 해열제를 먹이고 며칠 후 열은 잦아들었어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콧물 줄줄, 기침을 안 하는 아이들이 없어요. 열이 나지 않는다면, 아이 컨디션이 괜찮다면 다들 학교는 보내더라고요. 그래서 영국 아이들이 튼튼한가 싶기도 하고요.
지수가 두 돌 반쯤 되었을 때 세 식구가 베니스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비행기 벨트를 가지고 딸깍 딸깍 장난을 쳤죠. 그 장면이 기억이 나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재우려는데 아이의 왼손 중지 손가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빨갛게.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보고 벨트에 손가락이 끼인 거라고 확신했어요. 아이는 계속 손가락이 아프다고 울었죠. 각종 열에는 단련되었다 생각했는데, 부어오르는 손을 보고는 당황해서는 응급실로 달려갔어요. 2시간을 기다려 간호사를 만났는데 아이의 손을 찬찬히 살펴보던 간호사 말이. 요기 이 작은 상처가 벌레의 이빨자국이래요. 벌레 물린 걸로 응급실로 쫓아오는 극성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가 벌레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날은 세 식구가 실컷 웃고 푹 잤던 것 같아요.
살다 보니 느리고 답답한 영국의 시스템에도 적응을 하게 되고, 살다 보니 열에 놀라 가슴도 쓸어보고, 살다 보니 벌레에 물린 걸로 응급실을 쫓아가고 경험치를 쌓아갑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걱정으로 오락가락 마음 졸이는 엄마의 매일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